스위스의 시계 제조업체 스와치 그룹이 삼성전자를 상대로 제기한 상표권 침해 소송에서 역대 최대 규모인 1억 7000만달러(약 261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소송은 스마트워치 생태계 내에서 서드파티 앱이 저지른 디자인 복제 행위에 대해 플랫폼 제공자인 빅테크 기업이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가를 가르는 중대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영국 런던 고등법원에서 진행된 양사의 손해배상 산정 재판이 26일(현지시간) 종료됐으며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다.

이번 소송의 핵심은 삼성전자의 갤럭시 워치 전용 앱스토어에 등록된 타사 개발 앱들이다. 스와치는 사용자들이 이 앱들을 통해 오메가와 티쏘 등 스와치 그룹 산하 명품 브랜드의 디지털 화면을 그대로 복제해 사용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앞서 2022년 런던 고등법원은 삼성전자가 스마트워치에서 구동되는 타사 앱의 상표권 침해에 대해 법적 책임이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이번 재판은 그에 따른 구체적인 배상액을 확정하는 최종 절차다.

스와치 변호인단이 법원에 제출한 서류에 따르면, 1억7000만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배상액은 스와치 그룹 내 10개 브랜드의 '가상 라이선스 수수료'를 기준으로 산정됐다. 스와치는 이 금액이 포트폴리오가 가진 명성, 평판, 그리고 시장에서의 매력을 반영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반면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삼성은 스와치의 요구를 "터무니없고 과도하다"라고 비난하며 맞서고 있다. 디지털 화면 복제로 인해 시계 판매량이 감소했다는 직접적 인과관계가 부족하며, 요구액이 시장 관행을 벗어나 과도하게 부풀려졌다는 내용이다.

이번 소송은 단순히 디자인 도용 문제를 넘어, 희소성을 생명으로 하는 스위스 전통 시계 산업과 대량 생산 및 생태계 확장을 무기로 하는 빅테크 기업 간의 주도권 싸움으로 해석된다.

실뱅 롤라 티쏘 CEO는 법원 제출 서류를 통해 주요 글로벌 IT 기업들의 협업 제안에도 불구하고 스마트워치 시장에 진출하지 않은 이유를 밝혔다. 그는 "디자인을 스마트워치 같은 범용 제품에 라이선스하는 순간, 스와치 그룹 브랜드들이 수십 년간 쌓아 올린 가치는 파괴될 것"이라며 "스위스 고급 시계의 독점적인 가치를 죽이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번 영국 법원의 판결에 따라 삼성은 치명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스와치가 영국에서 승소하면, 이는 미국 등 다른 국가에서 삼성의 현지 자회사를 상대로 유사한 대규모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법적 발판이 된다.

임대준 기자 ydj@ai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