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웨일스의 법원이 몰래 법정 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메타의 스마트 안경 사용을 금지했다. 스마트폰은 법정에서 녹화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소지가 허용되지만, 메타 안경은 입장 과정에서 압수하도록 해 사생활 침해와 법정 절차의 은밀한 촬영 가능성을 차단하기로 했다.
더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과 웨일스의 형사·민사·가사 법원을 관할하는 영국 법원·재판소 서비스(HMCTS)는 11일(현지시간) 법원 건물에 메타 스마트 안경을 착용하고 들어오는 사람의 안경을 압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HMCTS는 법정과 재판소에서 이미지나 동영상을 촬영하는 데 명확한 제한이 있기 때문에 메타 안경의 사용을 금지한다고 설명했다.
영국에서는 공식적인 허가 없이 법원 건물에서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하는 행위가 금지돼 있으며, 이를 위반하면 법정 모독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스마트폰은 변호사나 일반 방문객이 소지할 수 있지만 법정 절차를 녹화해서는 안 된다. HMCTS는 이러한 스마트폰 소지 허용 원칙이 카메라가 내장된 스마트 안경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확히 밝혔다.
법원 관계자는 메타 안경을 소지하고 법원이나 재판소에 들어오면 보안요원이 입구에서 안경을 보관하고, 소유자가 건물을 나갈 때 돌려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용자가 몰래 녹화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것이다.
이번 조치는 최근 스마트 안경을 이용한 법정 내 촬영과 증언 과정에서의 부정행위 우려가 잇따른 가운데 나왔다. 앞서 영국 고등법원에서는 부동산 회사의 이사직을 둘러싼 사건에서 증언하던 라모나스 야크슈티스가 스마트 안경을 착용한 사실이 문제가 됐다. 담당 판사는 그가 반대신문 과정에서 질문에 답하는 데 도움이나 코칭을 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안경을 벗도록 요구했다. 당사자는 스마트 안경으로 답변을 전달받았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미국에서도 스마트 안경을 둘러싼 법원의 경계가 강화되고 있다. 뉴욕주 법원 시스템은 지난달 법원 시설에서 스마트 안경 착용을 금지하면서, 법정 절차를 몰래 녹화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지난 2월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소셜미디어 중독 관련 재판에서도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의 경호팀이 메타 안경을 착용한 모습이 포착됐다. 당시 담당 판사는 경호원들이 재판을 녹화하면 법정 모독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스마트 안경에 대한 경계는 법원뿐 아니라 영국의 민간 시설로도 확대되고 있다. 영국의 일부 레스토랑과 극장, 펍 등은 메타 안경을 통한 비동의 촬영과 사생활 침해 가능성을 이유로 착용을 금지했다. 특히 착용자가 주변 사람의 동의 없이 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일부에서는 메타 안경을 ‘스파이웨어’나 ‘변태 안경’으로 부르는 등 부정적인 인식도 나타나고 있다.
메타에 따르면, 지난해 약 700만개가 판매됐다. 가격은 영국 기준 269~469파운드(약 51만~90만원) 수준이다. 판매량이 빠르게 늘면서 스마트 안경이 일상적인 웨어러블 기기로 자리 잡는 동시에 공공장소에서의 촬영과 개인정보 보호 문제도 중요한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메타는 안경이 촬영 중일 때 주변 사람들이 확인할 수 있도록 전면에 점멸하는 표시등을 적용하고 있으며, 사용자가 이를 가리는 행위를 막기 위한 변조 감지 기술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 법원의 이번 조치에 대해서는 별도의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박찬 기자 cpark@ai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