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로픽이 AI 컴퓨팅 인프라 확보를 위해 비트코인 채굴업체 라이엇 플랫폼(Riot Platforms)과 약 90억달러(약 13조원) 규모의 장기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으로 앤트로픽은 미국 텍사스주의 라이엇 데이터센터에서 191메가와트(MW) 규모의 전력·컴퓨팅 용량을 확보하게 되며, 비트코인 채굴업체였던 라이엇은 AI 데이터센터 임대 사업자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게 됐다.

CNBC 등에 따르면, 라이엇은 11일(현지시간) 앤트로픽과 20년간 총 90억달러의 매출을 창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컴퓨팅 인프라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계약은 2048년 6월까지 이어지며, 앤트로픽이 추가로 두 차례, 각각 5년씩 연장할 수 있는 옵션도 포함됐다. 모든 연장 옵션이 행사되면 계약 규모는 161억달러(약 23조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

앤트로픽이 확보하는 191MW는 라이엇의 텍사스주 록데일 캠퍼스에서 제공된다. 이는 14만3000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의 전력 규모다. AI 모델의 학습과 추론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력망에 연결된 대규모 전력과 데이터센터 용량이 갈수록 희소해지는 가운데, 앤트로픽은 이번 계약을 통해 장기간 안정적인 컴퓨팅 인프라를 확보하게 됐다.

이번 계약은 AI 기업들이 단순히 GPU를 확보하는 것을 넘어 전력과 데이터센터를 선점하는 경쟁에 나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AI 모델의 규모와 사용량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데이터센터 건설에 필요한 전력 확보가 주요 병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앤트로픽은 최근에도 AI 컴퓨팅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인프라 계약을 잇달아 체결하고 있다.

지난 5월 스페이스X로부터 450억달러(약 64조원) 규모의 컴퓨팅 서비스를 구매하기로 합의한 데 이어, 이달 초에는 설립된 지 수개월밖에 되지 않은 AI 인프라 업체 볼타 인프라 홀딩스와 100억달러(약 14조원) 규모의 컴퓨팅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라이엇과의 계약까지 더해지면서 급증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컴퓨팅 능력 확보에 전방위로 나섰다는 평이다.

라이엇도 이번 계약이 사업 모델을 AI 인프라 중심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전망이다. 기존 비트코인 채굴 사업을 통해 대규모 전력과 부지를 확보해 왔지만, AI 붐이 본격화하면서 이를 고성능 컴퓨팅용 데이터센터로 전환해 장기 임대하는 사업의 가치가 커지고 있다.

특히 라이엇은 이미 AMD와 별도의 데이터센터 관련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이에 따라 AMD와 앤트로픽 등 두 개의 주요 임차인을 확보하면서 총 98억달러(약 14조원)의 매출을 보유한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게 됐다.

비트코인 채굴업체들이 AI 인프라 기업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는 현상은 최근 가속화되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 변동성이 커지고 채굴 경쟁이 심해지는 데다 4년마다 발생하는 반감기로 채굴 보상이 줄어들면서 채굴 사업의 수익성이 압박받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AI 기업들은 모델 학습과 추론을 위해 막대한 전력과 데이터센터가 필요해, 이미 전력 인프라를 확보한 채굴업체들이 새로운 수익원을 찾을 기회가 되고 있다.

실제로 사이퍼 마이닝(Cipher Mining), 허트 8(Hut 8), 테라울프(TeraWulf) 등 일부 비트코인 채굴업체들은 이미 AI 및 고성능 컴퓨팅 인프라 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이번 계약은 텍사스 지역의 전력 인프라 희소성이 AI 데이터센터 사업의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텍사스 전력망 운영기관인 ERCOT가 신규 대규모 전력 프로젝트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면서 이미 승인된 대규모 전력 용량의 가치가 더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AI 기업 입장에서는 새로운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것뿐 아니라 실제 전력망에 연결된 용량을 얼마나 빨리 확보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경쟁 요소가 되고 있다.

박찬 기자 cpark@ai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