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디지털 권리 옹호단체가 메타의 스마트 안경이 독일의 개인정보 보호법을 위반한다며 메타와 관련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들을 형사 고발했다. 스마트 안경이 카메라와 녹화 기능을 제공하면서 이용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타인을 촬영할 수 있다는 점이 법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로이터에 따르면, 디지털 권리단체 헤이트에이드(HateAid)는 12일(현지시간) 메타의 ‘레이밴 메타 웨이페어러’를 비롯한 스마트 안경의 독일 출시가 디지털 개인정보 보호 규정을 위반한다며 프랑크푸르트의 디지털 범죄 수사기관인 ZIT에 형사 고발장을 제출했다.
고발 대상에는 메타 경영진뿐 아니라 레이밴 브랜드를 보유한 안경 제조업체 에실로룩소티카의 관련 법인과 독일 내 유통업체인 필만(Fielmann), 아폴로 옵틱(Apollo-Optik), 미스터 스펙스(Mister Spex), 미디어마크트(MediaMarkt) 등이 포함됐다.
헤이트에이드는 독일 연방의 디지털 데이터 보호 관련 법률을 근거로 들었다. 이 법은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상태에서 타인을 촬영할 수 있도록 설계된 통신기기의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스마트 안경은 일반 안경과 외관상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착용자가 카메라를 작동해 주변 사람을 촬영하더라도 피촬영자가 이를 쉽게 알아채기 어렵다는 것이다.
조세핀 발롱 헤이트에이드 대표는 스마트 안경을 착용한 사람이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어 시민들이 언제든 자신이 촬영되고 그 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될 수 있다는 불안에 노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스마트 안경이 감시 장비가 아닌 일상적인 소비자 제품처럼 보인다는 점이 사생활 침해를 더욱 어렵게 인식하도록 만든다고 지적했다.
프랑크푸르트 디지털 범죄 검찰인 ZIT는 헤이트에이드의 고발장을 접수했으며,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추가 수사가 필요한 근거가 있는지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고발이 즉각적인 형사 수사 착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일에서 스마트 안경의 촬영 기능을 둘러싼 법적 검토가 본격화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독일의 스마트 안경 규제 논의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독일 연방네트워크청(BNetzA)은 2023년 말 연결형 기기의 은밀한 음성·영상 녹화를 금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다만 스마트 안경 자체의 소유나 수입, 판매가 일률적으로 금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현재의 해석이다.
BNetzA는 스마트 안경에 녹화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이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녹화가 진행될 때 안경에 광학적 신호가 표시되는 방식이라면 판매와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재 스마트 안경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있지만, 이번 사안과 관련해 공식적인 법 위반 조사를 시작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독일 내 다른 지역에서도 스마트 안경의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지 방송 SWR은 지난 7월 함부르크주의 개인정보 보호기관이 스마트 안경 사용과 관련해 법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통업체들도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미디어마크트새턴 리테일 그룹은 고발 내용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공급업체들이 판매 제품이 관련 법률을 준수하도록 계약상 의무를 부담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스터 스펙스는 아직 공식적으로 고발 통지를 받지 못했다면서도 개인정보 보호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논란은 스마트 안경이 단순한 웨어러블 기기를 넘어 새로운 형태의 촬영·감시 기술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와 맞물려 있다.
헤이트에이드는 최근 이미지 기반 디지털 폭력이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한 피해 사례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마트 안경이 일반 안경처럼 보이는 특성 때문에 촬영 장비라는 사실을 숨기기 쉬워, 이러한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박찬 기자 cpark@ai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