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랙 대화와 화상회의 녹화, 고객지원 기록, 이메일, 업무 문서, 코드 변경 기록 등 과거에는 기업 내부에 묻혀 있던 데이터가 AI 에이전트를 훈련하는 핵심 자산으로 부상하면서 스타트업의 오래된 업무 기록에 새로운 ‘데이터 가치’가 매겨지고 있다.

13일(현지시간) 디 인포메이션에 따르면, AI 업계는 인터넷에 공개된 데이터를 넘어 실제 사람들이 일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현실 세계의 업무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스타트업의 사내 기록까지 사들이고 있다. 

AI 에이전트 스타트업 웜리(Warmly)의 사례가 대표로 소개됐다. 웜리는 지난 6월 말 허브스팟에 인수되기로 합의한 지 불과 8일 만에 데이터 구매 제안을 담은 이메일을 받았다. AI 모델 학습용 데이터를 확보하는 머코어(Mercor)가 웜리의 코드베이스와 직원들의 업무 기록 및 소통 데이터를 최대 30만달러(약 4억원)에 사들이거나 라이선스하겠다는 제안을 보낸 것이다.

웜리는 허브스팟의 인수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데이터를 중심으로 네 차례에 걸친 제안을 받았다. 여기에는 슬랙 메시지, 깃허브와 아사나 콘텐츠, 구글 드라이브 문서, 수년간 축적된 직원 회의 녹취록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맥시머스 그린월드 웜리 CEO는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허브스팟도 이번 인수가 인재 확보를 중심으로 이뤄졌으며, 데이터는 어떤 형태로도 인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AI 기업들은 이전에 폐업했거나 매각된 스타트업의 코드베이스를 사들여 코딩 능력 향상에 활용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코드 자체보다 실제 인간이 문제를 해결하고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이터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AI 에이전트가 실제 업무를 대신 수행하는 단계로 발전하면서, 인간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자체가 AI 훈련에 중요한 데이터가 됐기 때문이다. 일론 머스크 CEO도 최근 스페이스X의 내부 직원 데이터로 그록을 학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데이터 확보 업체 프로테제(Protege)의 바비 새뮤얼스 CEO는 AI 연구소들이 사실상 인터넷 전체를 소모한 상황에서 이제는 실제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 데이터가 필요해졌다고 설명했다. 프로테제는 올해 들어 최소 1억달러(약 1400억원) 이상의 데이터를 거래했으며, 이는 지난해 전체 거래액인 3000만달러보다 3배 이상 증가한 규모다. 프로테제는 거래 금액의 25~30%를 수수료로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AI 기업들이 가장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데이터 중 하나는 기업의 일상적인 업무 기록이다. 슬랙 대화나 IT 지원 요청 기록에는 직원들이 실제 문제를 어떻게 설명하고 해결하는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특정 직원의 사파리 브라우저에서 웹사이트 로그인이 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면, IT 지원 내용과 슬랙 대화, 문제 해결 과정 등을 연결해 AI 에이전트가 비슷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학습할 수 있다.

이메일과 화상회의 기록도 주요 거래 대상이다. 엔지니어들이 기술적 문제를 논의한 이메일, CFO가 회사 실적을 놓고 동료들과 나눈 화상회의, 아사나나 구글 드라이브에 저장된 프레젠테이션 자료, 깃허브에서 엔지니어들이 코드를 수정한 기록 등이 모두 AI 학습 데이터로 활용될 수 있다.

특히 기업 구성원이 소프트웨어를 실제로 사용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은 AI 에이전트 개발에 매우 중요한 데이터로 평가된다. 영상 마케팅·교육 소프트웨어 기업 비드야드(Vidyard)는 370만 시간에 달하는 동영상 아카이브를 보유하고 있는데, 구매 희망자들은 직원들이 세일즈포스, 넷스위트, 허브스팟 같은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실제로 사용하는 장면과 작업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하는 모습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AI 데이터 수집 업체들이 노리는 것은 단순한 업무 기록만이 아니다. 특정 기업이나 산업이 독점적으로 보유한 데이터세트도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물류업체가 보유한 수천개 운송업체와 배송 기록, 의료·에너지·금융 분야의 전문 데이터처럼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독점 데이터는 경쟁 기업과 차별화된 AI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기업 내부 데이터를 AI 학습에 판매하는 과정에는 개인정보와 지식재산권, 고객과의 계약 문제가 뒤따른다. 데이터 중개업체들은 AI 연구소에 판매하기 전에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를 제거하거나 데이터를 익명화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하지만 개인정보를 지나치게 제거하면 AI가 학습할 정보의 맥락까지 사라져, 데이터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또 의료 정보와 같은 민감한 데이터는 관련 개인정보 보호 규정의 적용을 받을 수 있고, 고객과 체결한 이용약관이나 데이터 사용 조건을 위반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데이터를 판매하려는 스타트업은 자신이 해당 데이터의 지식재산권을 보유하고 있는지, 고객의 동의를 받았는지, AI 학습용으로 재판매할 법적 권한이 있는지 등을 사전에 검증해야 한다.

데이터의 희소성이 높아지면서 거래 방식과 가격을 둘러싼 갈등도 커지고 있다. 벤처캐피털 업계에서는 대형 기술 기업이나 AI 기업이 스타트업 전체를 인수하는 대신 데이터만 저렴하게 라이선스하려 한다는 불만이 나온다.

제이슨 프레스먼 샤스타벤처스 매니징 디렉터는 대기업들이 기업 가치가 1억~3억달러(약 1400억~4200억원)에 달하는 스타트업에 연간 수백만~1000만달러 수준의 데이터 라이선스 비용을 제시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스타트업 입장에서 데이터가 기업 전체 가치의 핵심 자산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데이터만 넘기는 대가로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을 받게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데이터 라이선스 이후 스타트업에 남는 자산의 가치가 크게 줄어든다면, 차라리 기업 전체를 인수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박찬 기자 cpark@ai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