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AI 데이터센터와 GPU를 금융시장에서 장기간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새로운 투자자산으로 만들기 위해 월가의 대형 자산운용사들과 손잡았다. AI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기관투자가와 사모자본 시장에서 끌어모아 데이터센터 건설과 엔비디아 GPU 구매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AI 컴퓨팅을 기존 부동산이나 인프라 자산처럼 금융상품화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CNBC 등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10일(현지시간)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 블랙록, 블랙스톤, 브룩필드, 골드만삭스, KKR 등 6개 금융기관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들 기관과 엔비디아 고객을 위한 별도의 자금조달 플랫폼을 구축해 5000억달러(약 707조원) 이상의 외부 자본을 동원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주요 대상은 대형 클라우드 사업자인 하이퍼스케일러와 최첨단 AI 연구소, 기업 및 정부 등이다. 이들이 데이터센터와 이른바 ‘AI 팩토리’를 건설하고 엔비디아의 GPU와 서버 장비를 확보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쉽게 조달하도록 지원한다. 엔비디아는 구체적인 기관별 투자 규모나 자금 집행 시점, 금융 구조는 공개하지 않았다.

핵심은 AI 컴퓨팅을 단순한 반도체 장비가 아니라 수익을 창출하는 장기 금융자산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이번 구상에 대해 “기술 칩이 투자 가능한 자산군이 된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라며 엔비디아의 칩이 생산성을 창출하고 수명이 길며, 여러 고객이 활용할 수 있고 다른 시스템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동안 GPU는 새로운 세대의 제품이 빠르게 등장하면서 가치가 빠르게 떨어지는 장비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생성 AI와 에이전트 확대로 GPU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는 엔비디아의 판단이다. 데이터센터에서 GPU가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다른 고객에게도 활용될 수 있다면, 이를 담보로 대출이나 리스 등 장기 금융을 제공할 수 있다는 논리다.

블랙스톤도 AI 컴퓨팅을 주택담보대출 시장에서 주택을 바라보는 것과 유사한 ‘금융 가능한 자산’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래리 핑크 블랙록 CEO는 이번 움직임을 "금융공학의 새로운 단계"라고 평가하며 AI 인프라에 대한 장기 자금 수요가 상당할 것으로 전망했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도 "AI 투자가 역사적인 전환점에 있다"며 "엔비디아 컴퓨팅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신용시장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언급했다.

이번 협력은 AI 인프라 투자에 필요한 자금 규모가 급격히 커지는 가운데 나왔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올해 AI 관련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전력 인프라 등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할 계획이며, 이에 따라 기업의 자체 현금흐름만으로는 증가하는 투자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엔비디아는 대규모 기관자금을 활용해 AI 기업들이 자체 대차대조표에 부담을 크게 늘리지 않고도 컴퓨팅 인프라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다만 이번 계획은 AI 업계에서 논란이 되는 ‘순환 금융’ 우려를 키울 가능성도 있다. 엔비디아는 이미 AI 기업과 데이터센터 사업자 등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거나 자금조달을 지원해 왔으며, 이러한 자금이 다시 엔비디아의 GPU 구매로 이어지는 구조가 반복되면 AI 산업의 수요와 기업 가치가 실제보다 부풀려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한편, 엔비디아가 추진해 온 오하이오주 대형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와 이번 금융 플랫폼의 연계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오하이오에서는 10기가와트(GW) 규모의 초대형 데이터센터가 건설되고 있으며, 오픈AI가 주요 입주 기업이 될 가능성이 거론돼 왔다.

엔비디아가 이 프로젝트와 관련해 최대 2500억달러(약 363조원) 규모의 자금 지원을 검토했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이번 5000억달러 규모의 금융 플랫폼이 이 사업에 직접 활용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엔비디아는 이번 협력을 통해 AI 컴퓨팅을 전력·통신망과 같은 핵심 인프라로 재정의한다는 전략이다. GPU를 단순히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기반으로 데이터센터의 건설과 운영, 금융까지 연결하는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의미다.

이번 프로젝트의 성패는 GPU가 과연 장기간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금융자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차세대 GPU가 기존 제품의 가치를 빠르게 떨어뜨리면, 금융기관이 예상한 담보가치가 훼손될 위험도 있다. 반대로 AI 컴퓨팅 수요가 예상대로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면 엔비디아의 GPU는 기존 장비와는 다른 형태의 장기 인프라 자산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

박찬 기자 cpark@ai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