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자국 IT 기업들의 엔비디아 'RTX 프로 5500' 구매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화웨이 등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급증하는 AI 컴퓨팅 수요를 충분히 감당하지 못하면서, 그동안 제한해 온 미국산 칩까지 대안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26일(현지시간) 디 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최근 바이트댄스와 알리바바 등 주요 IT 기업에 RTX 프로 5500의 구매 계획을 제출하도록 요청했다.
필요한 칩 수량과 구체적인 활용 목적을 함께 보고하도록 했으며, 일부 기업에는 당국이 구매를 승인할 계획이라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실제 승인 시점과 허용 물량, 구체적인 심사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RTX 프로 5500은 엔비디아가 이달 출시한 고성능 전문가용 워크스테이션 GPU다. 최첨단 AI 데이터센터용 가속기와는 성격이 다르다. 엔비디아의 최고급 AI 가속기에 들어가는 고속 인터커넥트 기술이나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갖추지 않았고, 엔비디아의 고성능 게이밍 GPU와 같은 계열의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다.
그럼에도 중국 AI 기업들이 이 칩을 원하는 이유는 AI 모델을 실제로 구동하는 데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미국의 대중 수출 규제 기준을 피해 중국에 공급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RTX 프로 5500을 일반적인 워크스테이션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AI 서버에 여러 개 탑재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업체는 서버 한 대에 8개의 RTX 프로 5500을 넣어 대규모 AI 모델을 구동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트댄스는 100만개의 RTX 프로 5500 구매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최종 주문량은 중국 당국이 승인하는 물량과 공급 능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엔비디아는 중국 시장에 이 칩을 올해 12월 말부터 공급하기 시작해 분기당 50만개를 공급하는 방안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내 가격은 한 개당 8만5000~9만위안(약 1700만~1800만원) 수준으로 전해졌다. 중국산 AI 칩인 화웨이의 '어센드 950PR'과 비슷한 가격대다.
이번 움직임은 중국의 AI 칩 부족 때문이다. 중국 기업들이 챗봇과 AI 에이전트, 각종 AI 서비스를 빠르게 확대하면서 필요한 컴퓨팅 능력도 급증하고 있지만, 자국 반도체 기업들이 이를 모두 공급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 최대 AI 칩 업체인 화웨이조차 수요 증가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은 바 있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미국산 엔비디아 칩에 상당히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미국은 중국의 AI 및 군사 분야 활용을 우려해 최첨단 AI 가속기의 대중 수출을 제한했고, 중국도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과 보안 문제 등을 이유로 엔비디아의 일부 제품 구매를 막아왔다.
실제로 미국 정부가 중국 판매를 허용한 'H200'도 중국 내에서는 구매가 제한적으로만 이뤄졌다. 엔비디아는 7월26일 종료된 분기에 중국 H200 판매가 데이터센터 매출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가 허용한 물량만큼 판매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중국 정부는 미국의 수출 규제에 맞춰 성능을 낮춰 중국 전용으로 만든 엔비디아 제품에도 별도의 제한을 적용해 왔다. 지난해에는 미국의 수출 규정을 충족하도록 설계된 H20의 보안 문제를 조사했고, 이후 바이트댄스와 알리바바, 텐센트 등에 엔비디아 칩 구매를 중단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RTX 프로 5500 구매를 허용하는 움직임이 현실화하면 엔비디아에도 중국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미국의 수출 규제로 중국 첨단 AI 칩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점유율이 한때 약 95%에서 사실상 0%로 떨어졌다고 밝힌 바 있다. 그 빈자리는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업체들이 채워 왔다.
박찬 기자 cpark@aitimes.com